대한민국은 2025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르게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사회 전반에 미치는 충격은 단지 복지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 경제, 주거, 의료 등 거의 모든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준비된 시나리오가 부족하다. 그렇다면 먼저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선진국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 위기를 관리하고 있을까? 일본, 독일, 핀란드의 사례를 통해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시사점을 살펴보자.
노인의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둔 일본
일본은 한국보다 약 20년 먼저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현재는 초고령사회의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고령자 대책의 키워드를 지역 자립과 커뮤니티 기반 돌봄에 두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17년부터 추진한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이다. 이는 노인의 의료, 돌봄, 주거, 일상생활 지원을 지역 단위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정책 구상이다.
일본은 단순히 시설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자택에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 서비스를 분산시켰다. 지방정부에 권한을 넘기고, 주민 간 자조 공동체를 육성해 돌봄의 공동체화를 시도한 것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요양병원 중심의 정책을 줄이고, 커뮤니티 중심 돌봄으로 전환함으로써 비용 부담도 완화하고 노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다만, 일본의 이 모델은 지방 간 격차 문제와 지역 내 고령화의 이중 충격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지역사회 인프라 자체가 붕괴되고 있어, 제도의 실효성에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한국 역시 지방소멸과 고령화가 동시 진행되고 있어, 유사한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돌봄 형태를 보장하는 독일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사회보험 기반의 장기요양제도를 도입한 나라다. 1995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고령자 요양을 가족에게 전가하지 않고, 사회 전체가 분담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보험료는 근로자와 고용주가 절반씩 부담하고, 국민건강보험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현금 급여와 서비스 급여 중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족이 돌보기를 원할 경우 일정 수준의 현금을 지급하고, 요양 서비스를 원할 경우 공인 요양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독일은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면서도 다양한 돌봄 형태를 보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24시간 외국인 간병인 시스템도 확대되어,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도 점점 돌봄 수요가 폭증하면서 요양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간병 전문 인력 양성 확대, 노동이민 확대, 재택 돌봄 강화라는 세 가지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국의 장기요양보험도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서비스 중심의 급여 비중이 높고, 가족 돌봄 부담을 줄이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정책 설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노후의 자립이 핵심 가치인 핀란드
핀란드는 복지국가 이미지와 함께 노인 정책의 질적 수준이 높은 국가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핀란드의 정책은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니라, 노인의 자립성과 지역사회 참여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핵심은 자기주도 노후생활을 위한 물리적, 사회적 환경 조성이다.
우선, 핀란드는 노인을 위한 공공임대주택과 서비스 연계형 주거시설을 결합시켰다. 노인이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도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주거지와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이를 서비스 하우징이라고 부른다. 주거지 내에 식사, 세탁, 간단한 간병 서비스가 포함되어 노인의 삶을 분리시키지 않으면서도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핀란드는 또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을 줄이고 의료 서비스를 원격으로 연결하고 있다. 고령자에게 기술을 강제하는 대신, 참여 기반 교육을 통해 디지털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한국처럼 급속한 고령화에 비해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국가에게는 큰 시사점을 주는 사례다.
다만, 핀란드의 복지 시스템은 높은 조세 부담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정책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한국에 단순 이식하기보다는 철학과 구조적 설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속도에 쫓겨 대응 중심의 고령화 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일본, 독일, 핀란드의 사례는 우리에게 선택 가능한 미래의 경로를 보여준다. 복지의 확대냐, 지역의 자립이냐, 가족 부담의 완화냐, 각 국가는 고령화라는 동일한 현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리해왔다. 한국이 이제 해야 할 일은 땜질식 대책을 넘어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시나리오를 선택하고 실현할 정치적 용기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