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헝다 그룹 사태로 촉발된 중국 부동산 시장의 위기는 단순한 일시적 쇼크를 넘어 중국 경제 전반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적 사건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25년 현재, 일부에선 위기는 진정됐다는 평가를 내리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부동산 불황의 여진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중국 증시의 밸류에이션 구조 전반에 근본적인 재편을 불러오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중국 부동산 위기가 남긴 구조적 충격이 어떻게 증시의 평가 기준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분석해본다.
부동산 기반 성장의 한계
중국 경제는 지난 20년간 부동산과 인프라 중심의 고정자산 투자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왔다. 지방정부는 토지 매각 수익으로 재정을 충당했고, 기업과 가계는 부동산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여겼다. 이런 흐름은 건설, 철강, 시멘트, 가전, 금융 등 자산 사이클에 민감한 산업군에 프리미엄 밸류에이션을 부여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2021년 이후 중국 정부는 집은 사는 것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슬로건 하에 고강도 규제를 단행했고, 부동산 기업의 디폴트가 줄을 이었다. 2025년 현재, 헝다·비구이위안 등 대형 업체들이 구조조정 국면에 놓여 있으며, 미분양 아파트는 여전히 수천만 채에 달한다. 그 결과, 고정자산 투자 확대에 따른 성장 기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고, 관련 산업군의 주식은 성장주가 아니라 구조조정 대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특히 금융권의 경우, 과거에는 부동산 담보 대출 확대를 기반으로 실적 안정성을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부실 대출 우려가 끊이지 않으며 은행주 밸류에이션이 지속적으로 할인되는 흐름을 보인다. 이는 단순한 업종 재편이 아니라, 중국 증시 전반의 평가 체계가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정자산 투자 기반의 수익 모델은 구조적으로 신뢰를 잃었고, 해당 업종은 더 이상 안정적인 고배당주나 성장주로 분류되지 않는다.
신형 생산력 중심의 재평가
부동산과 전통 제조업 중심의 성장 모델이 흔들리면서, 중국 정부는 2023년부터 신형 생산력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기술 기반 산업, 첨단 제조업, 친환경 에너지, AI 및 빅데이터 산업군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특히 AI 반도체, 전기차, 태양광, 수소에너지, 스마트 농업 등에 대한 직접적 재정 투자와 세제 지원을 확대하면서 이들 섹터의 기업에 대한 시장 밸류에이션을 다시 쓰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CATL, BYD, 화훙반도체, SMIC, 리오토, 샤오펑 등 기업이다. 이들은 과거엔 성장 기대는 있지만 정책 리스크가 높고 수익 안정성이 떨어지는 종목으로 분류됐지만, 지금은 정책 수혜+기술 경쟁력이 결합된 프리미엄 섹터로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나 차세대 에너지 관련 기업의 경우, 아직 실적이 본격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PER이 80배 이상으로 거래되는 등, 과거 부동산 기업이 누리던 밸류에이션의 위치 교체가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은 재편은 단기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정책 방향, 자금 흐름, 민간 투자심리의 3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구조적 변화다. 부동산의 여진이 부정적인 프리미엄 소멸이라면, 신형 산업군은 새로운 성장 프리미엄 부여의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은 향후 5년 이상 중국 증시 구조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구조 성장 vs 정책 리스크 간 균형
중국 증시의 밸류에이션 구조 변화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 변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과거 외국인 자금은 주로 대형 국유기업과 부동산 개발 기업에 집중되었고, 이들은 높은 배당과 안정적인 실적을 이유로 꾸준히 자금 유입이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부동산 부실, 정부의 강한 개입, 통계 신뢰도 저하,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인해 외국인은 이익보다 리스크를 먼저 보는 태도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은 전통산업 vs 신성장 산업 간의 선별적 투자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특히 정책 방향성과 일치하는 기술·에너지·소비재 섹터에 집중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자본시장 자체에 대한 장기 투자 매력도 역시 재평가되고 있다. 구조 개혁이 더딘 국유 부문, 낮은 수익성과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들은 글로벌 포트폴리오에서 차츰 제외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 자금의 탈중국만 일어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투자자들은 중국 내에서도 정책과 함께 가는 구조적 성장주를 찾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환율 변동성이나 거시 리스크보다, 개별 기업의 장기 성장 전략과 정책 적합성이 밸류에이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중국 부동산 위기의 여진은 단순한 건설경기 침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중국 경제의 성장 서사가 바뀌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본시장의 평가 기준 또한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 이상 토지와 건설이 중심이 아닌 시대, 투자자들은 기술, 친환경, 디지털 경제 등 새로운 축을 중심으로 밸류에이션을 다시 산정하고 있다.
이제 중국 증시의 무게중심은 어떤 부문이 정책 신뢰를 얻고, 어떤 기업이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 자리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외형 성장보다 구조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시점이다. 부동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평가 기준을 세우는 지금, 중국 증시는 중대한 전환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