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단순한 관세 분쟁을 넘어 일상 경제에 깊숙이 뿌리내리면서, 중국 내부에서는 애국경제라는 새로운 소비 문화가 뚜렷이 부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자국 제품을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외국산 제품에 대한 보이콧, 자국 브랜드에 대한 감정적 지지, 소비를 통한 애국 실천이라는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무역전쟁과 애국경제의 형성
이러한 변화는 2018년부터 이어진 미중 무역 분쟁과 2020년 이후 지속된 기술 패권 경쟁, 그리고 최근 몇 년간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및 AI 기술 수출 통제가 이어지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중국 소비자들은 외부 압박이 강해질수록, 내부 결속을 다지고 국가의 기술 자립을 응원하는 방식으로 소비를 선택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애플이나 나이키와 같은 미국 브랜드 제품은 일부 도시에서 공개적인 불매 운동 대상이 되었고, 그 자리를 화웨이, 리닝, 홍싱얼커 같은 토종 브랜드들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이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관영 언론은 애국적 소비는 중국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정부는 로컬 브랜드에 대한 정책적 우대를 통해 이들을 기술적,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기업들도 중국의 자존심, 국산의 힘 같은 광고 슬로건을 통해 민족주의 감정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애국경제는 이제 단순한 사회 분위기가 아니라, 국가 전략과 소비 트렌드가 결합된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가고 있다.
궈차오 열풍, 국산 브랜드의 부상과 문화적 자부심의 결합
중국 내 애국경제의 중심에는 궈차오 현상이 있다. 이는 국산 브랜드의 유행이라는 뜻으로, 단순히 제품의 생산지나 브랜드 국적이 중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중국 전통 문화, 현대 감성, 기술력, 그리고 민족 자부심이 결합된 새로운 문화 소비 트렌드다.
대표적인 예로 스포츠 브랜드 리닝은 단순한 체육복 제조업체에서 벗어나, 중국 전통 문양과 현대 패션을 결합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젊은 소비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또한 화장품 브랜드 퍼펙트 다이어리, 허란즈는 서구의 뷰티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는 품질을 갖춘 동시에, 중국 고대 미학을 제품에 녹여내며 문화적 자존심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궈차오의 등장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중국 청년층의 가치관 변화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이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를 단순한 대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에 대적할 수 있는 당당한 선택지로 인식하며, 오히려 외산 브랜드는 정치적 이유나 정서적 거리감 때문에 기피한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 중산층뿐만 아니라, 중소 도시의 Z세대 소비자층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문화 기반의 민족주의 소비는 중국 정부가 장기적으로 지향하는 내수 중심 성장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수출 의존형 경제에서 내수 중심 경제로 전환하고자 하는 중국의 경제 전략 속에서, 국산 브랜드의 부상은 경제적 자립뿐 아니라 정체성 확립의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중국식 소비 모델의 확산 가능성과 한계
중국식 애국경제 모델은 단순한 국내 소비 진작을 넘어서, 글로벌 공급망과 소비 트렌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중국이 내세우는 자국 브랜드 중심의 소비모델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등 일대일로 연선 국가들에서도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경제 교류를 넘어 문화 확산과 소프트파워의 일환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국가는 중국산 브랜드를 단순한 수입품이 아닌, 기술 자립의 상징 혹은 서방 이외 대안 모델로 인식하며 호응하고 있다. 화웨이, 샤오미, DJI 등의 브랜드는 서구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스마트 소비를 가능하게 해주는 대체재로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제재가 심한 지역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 모델은 구조적인 한계도 안고 있다. 우선 중국 내 애국적 소비 열풍이 지속되려면, 자국 브랜드가 품질·기술·디자인 측면에서 글로벌 브랜드와 실질적으로 경쟁 가능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일시적인 감정에 기반한 소비는 반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지나친 민족주의 소비는 해외 투자자 및 외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중국 경제의 개방성과 유연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글로벌화된 공급망 구조 속에서 민족주의 소비만으로 경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도체, 소재, 첨단 장비와 같은 분야에서는 여전히 외부 기술과 자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폐쇄적 애국경제가 아니라 개방형 애국경제로의 균형이 요구된다. 이는 중국 정부가 최근 강조하고 있는 쌍순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중국의 애국경제는 정치적 위기의 돌파구이자, 민족적 자존심의 발현이며, 동시에 새로운 경제 질서 실험의 현장이다. 이 실험이 지속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감정에 의존한 소비를 넘어서, 기술력과 품질, 개방성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브랜드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중국식 민족주의 소비는 이제 하나의 일시적 유행이 아닌, 장기적 경제 전략과 사회 심리의 복합적 결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