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복귀와 함께 다시 고개를 든 관세정책은 미중 무역전쟁의 재점화를 암시한다. 미국은 2025년부터 특정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기술 수출 제한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단기적으로는 중국 수출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중국은 아세안 및 유럽 시장으로의 전략적 진출을 통해 반사이익을 노리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중국의 시장 전략 전환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중국+1을 넘어 중국 중심 공급망으로
미국의 고관세 정책은 글로벌 제조업체로 하여금 중국 외 다른 생산기지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중국+1 전략이 부상했으며,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세안 국가들은 외국인직접투자 유입 증가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 역시 이 흐름에 맞서 지역 내 공급망 심화 전략을 펼치며 아세안 시장을 단순 소비처가 아닌 생산·유통의 허브로 재구성하고 있다.
중국 기업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합작법인을 설립하거나 현지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국 브랜드의 현지화 및 역내 통합을 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화웨이와 CATL은 태국 내 생산기지를 기반으로 동남아 전역에 대한 수출기지를 확장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리스크 분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또한 RCEP 발효 이후 중국과 아세안 간 관세 장벽이 실질적으로 낮아지면서, 중간재 수출 및 부품 생산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중 갈등으로 인한 부정적 효과를 역내 통합으로 흡수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녹색 산업과 첨단 제조를 겨냥한 재편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는 중국이 유럽을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로 삼는 배경이 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의 그린딜 정책, 디지털 전환, 산업재편 흐름과 중국의 공급 역량이 맞물리며 기회 요인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유럽 시장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첫째,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의 본격 진출이다. BYD, 지리, NIO 등은 유럽 내 조립공장을 설립하거나 기존 유럽 브랜드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CATL은 헝가리에 초대형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이는 단순 수출에서 벗어나 유럽 내 생산을 통한 무역장벽 회피 및 고용 창출 효과까지 고려한 전략이다.
둘째, 태양광, 풍력, 전력저장장치 등 녹색 기술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이다. 중국은 유럽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발맞춰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입지를 넓히고 있으며, 이는 미국에서의 탈중국 움직임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특히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자국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중국산 기술과의 협업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고립주의가 초래한 글로벌 시장 재편에서 중국에게 제2의 중심시장 확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디커플링 속의 리커플링
2025년은 미중 디커플링이 구조화되는 해이자, 중국-아세안-유럽 삼각 연대가 리커플링의 형태로 부상하는 시점이다. 미국의 고관세는 단기적으로는 중국 수출에 부담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다자간 공급망의 재편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국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전략을 진화시키고 있다.
중국-아세안-EU 간 연결 인프라 확대 철도, 항만, 디지털 물류시스템 등 디지털 실크로드를 통해 물류 효율성 제고.
위안화 국제화 가속화 미달러 의존도 탈피를 위해 아세안 및 유럽 국가와 위안화 결제 확대. 특히 러시아-중국-유럽 간 에너지·원자재 거래에서 위안화 사용률 증가.
역내 기술 표준 연계 미국 중심의 기술 블록에서 벗어나, 아세안 및 유럽과 공동 기술표준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확대.
이는 단순한 탈미 전략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 질서의 재구성 속에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창출하려는 중국의 전략적 시도다. 특히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확대 기조와 맞물리면서, 미중 갈등이 단순한 강대국 싸움이 아니라 다극화 세계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의도치 않게 중국의 공급망 다변화와 시장 전략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아세안에서는 생산거점 분산과 소비시장 확대를, 유럽에서는 녹색 산업 및 첨단 제조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은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25년 이후의 미중 경쟁은 더 이상 단순한 무역 전쟁이 아닌, 시장과 시스템을 누가 설계하느냐의 싸움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이 아세안과 유럽에서 반사이익을 넘어 재구성된 패권 구조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는 미중 관계의 전개뿐 아니라, 유럽과 아세안이 얼마나 독자적 전략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의 관세라는 외부 압력은 중국에게 위기가 아닌 진화의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