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인공지능 기술을 미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특히 차이나 AI 2030 전략 아래 핵심 AI 기업을 육성하고, 반도체·로봇·빅데이터 등과의 융합을 촉진하면서 기술 자립을 빠르게 추진 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국의 AI 굴기는 한국 기업에게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위협일까, 혹은 새로운 기회의 문일까?
기술 자립 가속화하는 중국, 위기의 신호인가?
중국의 AI 산업은 과거 단순한 미국 기술 수입국 수준을 벗어나 자국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진화 중이다. 특히 2019년 이후 미국의 화웨이·바이트댄스 제재 이후, 중국은 AI 칩 설계에서부터 클라우드 인프라, 알고리즘, 모델 학습까지 모든 분야에서 자급자족 구조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바이두의 AI 모델 에르니, 알리바바의 통이치안, 그리고 텐센트의 의료 AI 솔루션은 기술력과 실제 적용 범위 면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 정부는 AI 스타트업에 대한 정책금융, 인재 육성, 데이터 공유를 아낌없이 제공하고 있으며, AI 도시 구축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기업에게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막대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자국 기술을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기회를 축소시킬 수 있다. 특히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장비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 추격은 한국의 기존 수출 주력 산업과의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경쟁을 넘어선 공존의 가능성
하지만 AI 경쟁이 곧 제로섬 게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국의 AI 기술 성장은 한국 기업에게 협업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반도체 설계 및 제조 기술은 중국이 자립하기 가장 어려운 분야 중 하나다. AI 연산에 필수적인 고성능 칩, 특히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은 여전히 절대적인 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
또한 AI 솔루션의 상용화 과정에서 필요한 UI/UX 설계, 산업 자동화, 모빌리티 시스템 등은 한국이 강점을 지닌 분야다. 중국이 기술 인프라를 제공한다면, 한국은 그 위에 올라탈 수 있는 응용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미·중 갈등으로 인해 양극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중간 허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즉, 기술 개발은 미국, 생산은 한국, 상용화는 중국이라는 삼각 협력 구도가 가능하다면, 한국 기업은 조정자이자 중개자로서 독자적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기회의 전제는 자체 경쟁력 강화에 달려 있다
중국 AI 산업의 급부상은 분명한 도전이지만, 이 도전을 기회로 전환하려면 한국 기업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AI 핵심 기술에 대한 R&D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단순한 알고리즘 적용이나 글로벌 오픈소스 활용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체 AI 모델 개발과 고유의 서비스 모델 창출이 관건이다.
둘째, 한국은 인재 생태계의 질적 고도화에 집중해야 한다. 중국은 AI 분야에 매년 수천 명의 박사급 인재를 양성하고 있으며, 산학연 협력을 통해 기술 사업화까지 전 주기를 연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대기업 중심의 폐쇄적 구조와 중소기업의 자금 부족, 고급 인재의 해외 유출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와 민간이 함께 하는 개방형 혁신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국제 AI 규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중국은 자국 중심의 데이터 주권을 주장하며 AI 윤리 규범도 독자적으로 정립 중이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 미국, 유럽 등과의 연계를 통해 국제 규범 형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글로벌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기술뿐 아니라 ‘기준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해야 한다.
중국의 AI 굴기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이를 마주한 한국 기업은 단순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위기는 항상 기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기술 자립을 넘어선 기술 ‘주권’ 경쟁 시대에서, 한국 기업이 경쟁자이자 파트너로서의 이중 역할을 수행하며 글로벌 AI 전환기를 선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